父 癌 鬪病

20.2.29 현재 (신장-집합관암, 다발성 뼈전이)

겸쯔 2020. 2. 29. 12:31

작년 10월 중순까지의 삶은 평탄했다. 아니, 평탄이 아니라 26년 살며 어느때보다 행복했다.

학생때는 여유가 없어 해외여행이며 여가생활, 놀거리를 즐기는거며 못했던 것을 직장 다니면서 내가 벌어 여행도 가고

즐기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었지.

딱 거기까지였다.

작년 1월달 친한친구와 서울여행, 2월엔 칭다오, 5월엔 다낭, 7월엔 또 서울 마지막 10월엔 제주도까지.

 아, 8월달부터는 자취까지해서 나름대로의 결정을 하고 내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었지.

정말 많이 놀고 즐겼고 행복했다.

19년도 초 아빠는 사업을 하다가 사기를 당했고 일없이 집에 있었다. 또 그것때문에 법적문제까지 갔다.

하루하루 서류를 준비하는 모습은 봐왔지만 아빠의 문제이며 내가 딱히 도움을 줄만한게 없으니 가만히 있었다.

얘기를 꺼내면 더 스트레스 받아할거니까. (거기다가 할머니 재산(?)문제로 더 스트레스 받았음..)

내가 한번씩 잠에서 깨면 아빠는 누워서 생각하는 모습을 봤었다. 낮에는 전화통을 들며 이리저리 전화걸면서 상황을

알아보고 도움을 청하는 소리도 들었다.

그래도 다 해결될 거라 생각하고 말았지. 그 뒤 8월부터는 아빠의 안부를 전화로만 알 수 밖에 없었다.

중간중간 허리가 아프다는 말은 했지만 운전을 하던 아빠의 직업병이라고 생각하며 침맞으러 다닌다는 아빠의 말에

알았다며 계속 그러면 엑스레이 찍어보라는 말밖에 못했다.

(2월달에 우리병원에서 직원할인으로 건강검진을 받아 고혈압, 당뇨 전단계, 약간의 안과문제, 용종 제거 밖에 듣질 못했고

흡연과 음주를 다 하는 아빠의 몸상태 치고는 너무 좋아서 걱정을 안했다. 그게 문제였다.)

자취를 하며 집에 자주 못갔고 짐을 챙긴다며 본가에 갔을 때 아빠를 보고 생각보다 허리가 많이 안좋구나 라고 깨닫고

아빠가 다니던 한의원, 통증클리닉, 작은 정형외과 병원을 가지말고 2차병원으로 가보자해서 집 옆에 있는 이름있는 병원으로

갔다. 그때가 10월 제주도 가기전이였지.

신경외과로 접수하여 일단 진료를 보고 담당과장님은 바로 MR을 권유하지 않고 약 조절 후 증상 호전없으면 일주일뒤 검사를

진행해보자고 하셨다. (휴...그때라도 빨리 그냥 MR을 찍어달라고 할 걸... 꽤나 과잉진료는 안한다고만 생각했다.)

그때의 아빠상태는 허리아파서 걷듯이 엄청 천천히 걸었다. 뻣뻣하게 척추를 세우며 걸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좀 심한 허리디스크라 생각했다.

일주일뒤 아빠는 약을 먹어도 호전이 없었고 더 악화만 될 뿐이였다. 제주도를 갔다오는 당일날 오전으로 예약을 해놨는데

오후 비행기라 영우와 아빠가 병원을 방문했다.

영우한테 전화가 왔고 아빠 MR을 찍었는데 이 병원에서는 안되며 큰 병원으로 가봐야한다고 했다. 빨리 가봐야한다는 말에 나

는 다시 아빠한테 전화를 했고 아빠는 급한게 아니라고 (금요일이였다) 다음주에 가면된다고 하여 아빠말을 듣고 알겠다고 끊

었다. 과장이 사진상에 빨간색이 보인다고 색깔이 있어 이게 뭔지 모르겠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암이 의심된다고 빠르게 치료 받아라고 한마디만 했어도 당장에 토요일에 갔었겠지.

아빠말을 듣고 급한게 아니라 생각을 하며  너무 궁금해서 월요일 이브닝 출근 전 MR찍었던 병원에 가서 판독지를 받아 봤다.

R/o metastatic malignancy

보자마자 잘못나온건 아닌지 신경외과 과장님을 찾아갔다.

접수도 하지 않은 채 바로 가서 외래 간호사한테 이러한 사정이 있는데 과장님좀 볼 수 있냐하니 그때 봤던 과장님은 휴진이라

다른 과장님한테라도 상관없냐하여 그런건 묻고 따지지도 않고 아무나 그냥 봐달라고 했다.

들어가서 MR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줬다. 현재 척추에 암으로 보이는게 있다. 보통은 척추쪽은 원발 종양보다도 원발암이 따로

있으면서 전이오는게 대다수란다. 들으면서도 믿겨지지 않아 떨리는 목소리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냐 물어보니 여기서 이러

안된다 큰병원을 하루빨리 가보고 진료를 받아봐야할 거다라고 하더라.

이브닝 출근하고 나서 인계받는시간에 계속 눈물이 나가지고 정말 혼났다.  

아직까지는 정확한게 아니니까 아무에게도 말을 안하고 차분히 해보자며 계속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 했는데도 이런 큰 충격은

정말 겪어보지 못하면 모를꺼다.

아빠에게는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도 고민이고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하지 영우는 아직 학생이고 주변에 어른들도 없고

정말 하루하루가 걱정 더미였다.

다음날 다행히도 오프라서 아침일찍 영우와 아빠랑 택시타고 부산대학교병원으로 이동하였다.

(병원선택하는 과정에서도 고신대, 인제대백병원, 동아대학교병원 어딜가야할지 고민고민하다가 우리병원이랑 가깝고

부산하면 그래도 부산대가 대표병원이고 국립이기도 해서 좀 더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

택시를 타고 무작정 부산대병원 응급실로 갔다.

레지던트로 보이는 의사에게 판독지를 줬고 아빠에게 다이렉트로 지금 아버님 상태가 어떤지 알고 계시냐 물었고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며 허리가 아프다고만 얘기를 했다. 그러자 그 의사는 검사했던 병원에서는 무슨 병인지 안알려주더냐

물어 아빠는 그렇다고 했다. 순식간에 그 의사는 아빠에게 암이라고 척추에 의심되는 암이 있고 그게 어떤 암에서 전이가 되서

지금 아버님이 허리가 아프신거라고 되어있다며 말을 했다. 너무 갑작스럽고 순식간에 말을 해버린 덕에 놀랐다.

반대로 아빠는 너무 덤덤했다. 그냥 그렇냐고 했다. 내가 응급실에서 그럼 진료 볼 수 있냐 하니 이거는 응급실에서 보면 안되고

먼저 척추센터에서 진료 본뒤 혈액종양 내과랑 협진을 하던 할거란다. 그래서 다시 척추센터로 갔다.

예약이 다 차있어서 당일진료는 어렵단다. 내일다시 예약해줄테니 아침에 오란다. 다시 걷기도 힘든 아빠를 데리고 택시타고

집으로 갔다.

그 다음날 척추센터로 아빠와 둘이서 갔다. 담당교수가 다른 보호자는 안계시냐고 해서 나밖에 없다고 했다. 내가 너무 어린

보호자라 얘기하기 힘든걸 얘기하려나 보다 생각했지. 아니나다를까 아빠를 내보냈다. 하는말이 지금 너무 암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고 아주 안좋은 상황이란다. 그래서 얼마나 안좋냐고 물어보니 자세히 알려면 혈액종양을 가야한단다. 그래서 간단하게 설

명만 듣고 다시 혈액종양내과로 갔다. 또 당일진료는 안된다고 했다. 다음날 오라고 해서 다시 아빠랑 택시타고 집으로 갔지.

너무열이 받아서 혈액종양내과 간호사실 앞에서 무슨 병원이 이렇게 운영하냐며 짜증섞인 말을 내뱉었다. 나도 의료진인데

대학병원 특성을 이해하지만 아픈환자 3일내내 이동만 했다. 아무것도 못하고... 너무 답답했다. 보호자로써

다음날 혈액종양에서 최대한 빨리 볼 수 있는 교수님으로 봐달라고 예약한 교수님을 뵈었고 입원장을 줄테니 그동안 집에서

병실날때까지 기다리고 PET CT(암진단시 필수로 찍는  CT), CT 를 찍어보자고 했다. 이틀에 걸쳐 부산대학교병원을 왔다갔다

하며 PET CT 와 abdomen chest neck CT를 진행했고 그 사이 입원병실이 나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입원을 해서는 PET CT 상  신장쪽에 원발로 보이는 암이 있는거 같다고 해서 신장조직생검을 진행했다.(19.11.5)

입원중에 bone scan까지 진행하고 퇴원을 했으며 우리병원에 다시 재입원을 했다.

우리병원 CRM(고객만족실)에 전화해서 직원인데 아빠가 신장암의심되고 척추전이 소견이 있어 입원원한다 병실하고 과장님

매칭을 해달라고 하니 빨리 진행해주셨다. 이때까지만해도 친구들이며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도 아무도 몰랐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말을 하려고 했지. 아빠는 이때까지만 해도 살은 많이 빠지긴 했지만 걸을수도 있었고 먹는거도 괜찮게 먹

었다. 아빠는 부정을 했었던거 같다. 나같아도 평생 약한번 달고 산적도 없고 병원이랑도 거리가 먼 사람인데 하루아침에 암

환자라니 지금내가 생각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질병이다...

신경외과로 매칭을 해줘서 외래로 내원을 했다. 과장님이 부산대에서 진행한 검사를 보고 놀라셨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 가

있냐며 그전 2월달 건강검진 시 과장님도 아빨 봐주셨기 때문에 그 당시와 지금의 상황은 천차만별이였으니까..

듣는 아빠는 엄청 담담했다. 난 마스크를 낀 안에서 콧물이며 눈물이며 질질질...

이때 당시 아빠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과장님은 여명이 일년정도 남았다고 했다. 길어도...

그러고 입원병실에서 계속 지냈다.

 

같이 일하는 동기가 아버지 어떠냐고 물어보길래 다 털어놨다.당장에 서울쪽 알아보라고 해서 그제서야

아차 싶더라. 바로 서울쪽에 유명하다는 곳 다 예약해놓고 삼성 아산 세브란스 하지만 기본 한달.. 두달을 더 기다려야하고

유명한 교수님은 내년이 되야 볼수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서울성모가 빠르게 볼 수 있어 예약을 해놓고 대리진료를

하러 갔다. 부산대에서 진료한 차트,  CD 를 다 카피해서 나이트 근무 마치고 다른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빨리 KTX 타고

갔었지. 돌아오는 말은 항암을 안하면 3개월, 항암을 하면 그 여명은 모른다고 했다.수술은 이미 전이가 된 상황이라 하지

못하고 항암밖에 없다고 했다. 항암을 서울에서 받는게 좋을 지 부산에서 받아도 될지 물어보니 어차피 항암치료 약은 다 똑같

다며 지방에서 해도 된다고 했다. 아무런 소득없이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다.

이후 몇군데 더 가봤지만 다들 하는 말은똑같다. 기대여명은 3개월이라고 하지만 아빠는 20년도 2월말 현재까지 계신다.

중간에 항암치료를 1-1,1-2,2-1까지 받았다. 총 3번 젬시타빈+시스플라틴 을 하고 우리병원에 입원하고 있으며 상태가 갑자기

안좋아져서(1월말) 항암을 중단했다. 부산대에는 현재 대리진료로 f/u하고 있다.

부산대 교수에 대해서 할말은 많지만... 휴 실력은 있다고 하니까 ....

지금 아빠는 12/25부터 현재까지 우리병원 암통합센터에서 과장님이 봐주시고 있다.

진단명은 신장에서도 집합관에 생긴 암(Lt. kidney4.3cm->6.2cm 증가) 다발성 뼈전이(경추,척추골반,skull, 손목,

정강이 등) 간에도 상세불명의 종양(이미 원발성 신장암으로 진단했기에 다시 간생검을 해서 암을 진단하는것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아마 이 종양덩어리도 나쁜 암새끼의 종양으로 판단된다. 7.2cm으로 증가되있음)

오른쪽 부신에도 1.3cm의 종양이 컸다. lower abdomen(rt.perihepatic) small ascite 또한 다발성으로 골절이

있는 상태이다. (흉골부위, 갈비뼈)

12/3 항암치료 처음 하고난뒤부터 힘이 없더니 점점 하지마비가 와서 현재는 걷지를 못하고 누워있는 상태다.

그래서 기저귀도 하고 있고  bed sore 도 생겼다. 현재는 치료중이지만 아물다가 다시 생기고 계속  position change도

해줘야한다. 먹는거는 엄청 줄어서 죽을 5숟갈 먹으면 많이 먹는거다. 위너프 페리(영양제)를 2-3일에 1번씩 맞고 있고

비타민도 섞어서 맞고 있다. 면역치료로 싸이모신 알파도 주 2회 sc로 맞고 있다.(NK cell이라고 이 세포가 암세포를 죽이는데 정상인은 500이상이나 우리 아빠같은 암환자나 면력저하 환자들은 현저히 낮다. 우리 아빠는 40이었고 2달동안 면역주사맞고도 50 밖에 안된다...) foley(소변줄)도 하고 있어서 output ck도 하고 있고...

몇주 전부터 소변량이 줄고 xray 상 pleural effusion(흉수)도 차있어서 라식스(이뇨제)도 쓰고 있다.

과장님은 따로 시술하지 않고 지켜보자고 한다.

며칠전에는 왼쪽 폐에 폐렴도 생겨서 항생제도 바꿔서 쓰고 있다.

처음 우리병원 입원했을 때 펜타닐(마약성)패취를 10mcg 썼는데 현재는 계속 올리며 통증 조절하다가 850 mcg

 을 쓰고 있다. 타진도 처음 부산대학교병원에서 10짜리 쓰다가 지금은 80까지 올렸다.

다른약은 리리카(신경통증약), 위장약, 칼슘제를 병원에서 정규약으로 쓰고 있고 영우와 상의해서 알벤다졸을 1월

초 부터 복용중이다. 처음에는 4on 3off로 조티펜스가 먹는  커큐민(BID)과 비타민감마E(BID) CBD oil (BID)로

복용을 했고 현재는 알벤다졸을(일주일정도전 끊음) 스탑하고 니클로사마이드와 비타민 1000mg 2T을 아침에만 복용

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아빠 상태이며 이브닝 퇴근 후 추후 기록해야겠다.

하루하루 아빠의 상태를 기록하면서 아빠와 나, 영우 있었던 일을 떠올릴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