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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 癌 鬪病

고비

by 겸쯔 2020. 3. 18.

3/14 나이트 마치고 병실로 찾았다.

계속 자고 있는 아빠

고모가 3/13-14까지 봐주셨는데 13일 밤 10시경쯤 아빠 통증이 지속되서

몰핀 맞고 수액에 섞인 몰핀을 2.5->8까지 올렸다.

그러고 잠을 푹 자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평소 집에서 자는 아빠 모습과 비슷하여 별 신경을 안썼다.

며칠전부터는 통증이 심했는데 오히려 진통제 맞고 잘 자서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게 화근이었나.

나는 고모잠시 보고 11시경 집에 도착해서 잠들었고

자는도중 영우가 깨워서 전화를 받았는데 병동 간호사샘이 아빠 상태가 조금 안좋았다고하며

DNR(심폐소생술 거부) 및 인공삽관 거부 여부를 물어봤다.

전부터 동생과 CPR과 intubation은 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었다.

그래서 선생님한테 두개 다 거부를 한다고 말씀드리며 아빠 지금 상태를 여쭤봤다.

그때는 다행히 올 상황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잠에 들었다.

영우는 그때 잠시 밖에 나갔었는데 화창했던 날씨에서

잠시 비가 왔었다고 한다. 슈퍼 갔을때는 우산들고 갔다가 나올때는 그쳤다고 ....

그때 영우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네시쯤인가 다시 고모한테 연락이 왔다.

아빠가 안좋다고 한다. 고비는 넘겼는데 차마 고모는 우리한테 오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바로 가야하는 상황인거 같아 지금 바로 가겠다고 했다.

영우와 택시를 잡아타고 바로 병원으로 향해서

아빠를 보는데 옵티플로를 하고 아직 자고 있는 상태인건지 의식이 없는 상태인건지

아빠가 보였다,

영우는 가자마자 울면서 매달리고 과장님이 그럴 상황은 아니고 고비를 넘겼다며

설명을 해주셨다,

몰핀이 아빠의 적정 용량을 넘어선건지 부작용이 왔고

그 부작용에 대한 해독작용을 하는 날록손을 반앰플 썼고 깨어나는 과정에서

경련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고 옵티플로 30L로 해서 들어가고 모르핀이 믹스된 수액을 제거했다.

그날부터 지금까지 영양제와 여러항생제 및 이뇨제, 전해질 균형 맞추는 수액을 맞았다.

그날 나이트 출근이었지만 나이트고 뭐고 출근이고 아무것도 모르겠고

수선생님께 나이트 출근 못하는 상황이라 말씀드리고 계속 아빠 옆에 있었다.

새벽내내 영우랑 교대로 해서 아빠 바이탈을 체크했고 다행히도 아무런 일이 없었다.

다음날 다행히 오프였지만 계속 나가지 못할것 같아 수선생님께 4월달 휴직하기로 한걸

조금 앞당겨서 15일부터 휴직을 해달라고 했다.

수선생님은 응급실 근무는 신경쓰지 말라며 아빠 간병 잘 해주라고 얘기 해주셨다.

정말 어딜가도 응급실 선생님들은 못만날 것 같다. 너무 좋으시다..

-

삼일째 고비다.

아빠는 현재 활력징후는 고만고만하다.

호흡하는게 한번씩 무호흡을 반복하긴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괜찮다.

3/15 과장님이 날록손을 한번더 해서 깨워보자고 했다.

그날은 0.5 앰플을 썼다.

바로 혈압이 90/60 -> 160으로 올랐고 호흡수도 8-10회였던 것을 22회-30회 정도까지 올랐다.

깨자마자 아빠는 통증을 호소했고 과장님이 바로 또 모르핀을 주자고 했다.

이 과정의 연속이라 옆에서 지켜보는게 너무 괴로웠다.

과장님이 잠시 다른환자 먼저 보고 오는 동안 차지선생님이 와서는

이제 그만 깨우는게 안낫겠냐고 하시며 ..

그때 아차했다. 난 당연하게 과장님 오더대로 행동하고 있었고,

당연히 과장님은 내가 심폐소생술 거부 및 인공삽관 거부인 것을 아는줄 알았다.

모른다고 해서 다시한번 말씀드리며 통증있어서 진통제맞고 또 의식쳐지면 깨우는 약쓰고

이 과정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아빠가 그냥 편안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고,

과장님이 더이상 깨우지 말자고 하셨다.

마음정리를 서서히 하고 있다.

지금 4일째 아빠는 밥을 못먹고 있다.

아빠는 아픈데 그 와중에 먹지도 못하는 아빠 옆에서 배고파서 밥을 먹는다.

죄스럽고 너무 미안하고 속상하다.

그리울때마다 아빠를 찍었던 사진과 영상을 본다,

그 시절이 꿈같다.

조금이라도 걸을수 있었고 휠체어를 탈 수 있었고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가고 웃기도하고 얘기도 했었던

아팠지만 아빠와 붙어지낸 시간이 많았던 몇개월 전이 이렇게 소중할 줄이야,

일하면서 아빠를 간병하니 놓치는 부분도 많았고 멘탈관리도 안되서 성질낼 때도 있었고 짜증을 받아주지도

못했던 적도 있다. 너무 후회된다,

내가 왜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나쁜년이다.

우리 먹여살린다고 밖에서는 많은 시련과 수난이 있었겠지. 그런거를 알리 없는 자식들은

더 모난말과 더 힘들게 한다.

그래 그걸 알았으면 내가 철이 다 들었지.

마음이 너무 속상해서 그냥 기억하기도 싫고 합리화만 하고싶다.

지금은 아빠,

편안하게 통증없이 우리 얘기 많이 들어주고

효도못한거 용서해주고 많이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우리 걱정은 하지말고 아픈거 없이만 있어주면 바랄게 없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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